김오랑 프로필 고향 사망원인
김오랑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12.12 군사 반란 중 순국했다.
1944년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에서 태어났다.
김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육군사관학교 25기로 입학해 1969년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으며 초임지는 제2보병사단 수색대 소대장 이었다.
이후,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74년 육군 특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시작으로 특전사 작전장교, 정보장교를 역임 후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고 졸업했다. 졸업 후 특전사 제5공수특전여단 중대장에 보임되었으나, 1979년 육군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사령부에 들어온 신군부 측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었다. 김오랑 중령을 죽인 군사반란군은 친하게 지내던 박종규 중령이었다. 박 중령은 23기로 김 소령의 육사 선배였다. 12·12 직전 부부동반 식사도 했던 사이다.
1980년 2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90년 부인 백영옥 여사의 노력으로 중령으로 특진 추서되었다. 김오랑 중령의 시각장애인 부인故 백영옥 여사(1948.11.27~1991.06.28)는 생전 1990년 12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를 비롯하여 전두환, 최세창, 박종규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다가 1991년 6월 28일 부산 영도의 자택 3층건물 난간에서 실족사했다.
김오랑 중령의 군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17대 국회에서는 안영근 의원이, 18대 국회에서는 김 중령의 고향 김해 지역구 김정권 의원이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건의안"을 발의하였으며, 2013년 민주당 민홍철(김해 갑)의원이 다시 발의하여 동년 4월 22일 통과되었다.
정부는 2014년 1월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했다. 이후 6월 6일 경상남도 김해시 삼정동 김해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의 산책로 옆 잔디밭에 김오랑 중령의 흉상이 세워졌다.
한편 김오랑 중령을 죽인 박종규 중령은 1993년 제56보병사단장(소장)으로 있다가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으로 강제 전역했다. 물론 하나회 항목의 '하나회 회원 명단'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하나회 회원이 아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면되었다. 그러나 실형 선고로 군인연금을 포함한 모든 예우를 박탈당해 부인이 동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수입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2009년 12월 9일, 김오랑추모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지금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하늘의 벌이라면서 12.12에 참여했던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2010년 12월 7일 식도암으로 투병 중 66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