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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 프로필 고향 나이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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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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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은 학생운동가 출신 한의사이자 사회운동가 이며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의 핵심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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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서울 출생으로 6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1973년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며 대학시절 박정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두번 구속되고, 제적당했으며 이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복권되어 복학했지만 신군부의 등장으로 다시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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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84년 다시 입시를 치르고 대전대 한의학과에 입학해 한의사가 되었고 1992년에는 공부를 마치고 한의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때 부실한 한약 제조법이 버젓이 유통되는 현실을 바로잡고자 동료 한의사들과 보건사회부와 국회 등에 이 사실을 알리는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이 훗날 한-약사법 분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감사로도 재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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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충청남도 시골에서 솔빛한의원을 운영하며 빛사람수양회를 이끌고 있으며 또 새로운세상여성연합 대표로 여성평화행복학교를 운영하며 한겨레 휴센터와 공동 주관으로 ‘고은광순과 함께하는 여성 건강 교실’(2박 3일)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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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한여한의사회 소식지에 글을 실으면서 여성 한의사로서 자신을 찾아오는 여성들의 여러 가지 호소를 듣게 되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여성주의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에는 '남녀 성비 불균형과 해결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10가지 방안을 제시했는데 여기서 호주제 폐지가 제1과제로 선정되었으며, 이와 함께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고은광순은 1998년 11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을 발족하며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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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는 《어느 안티미스코리아의 반란》이라는 담시집을 내면서 가부장사회를 거침없으면서도 즐거운 풍자와 해학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고은광순은 데일리 서프라이즈, 오마이뉴스 등 진보주의 성향의 매체에 여성주의 등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인, 종교법인의 재정 투명화와 소득세 납부를 위한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의 대표 및 '한부모 가정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 모임’의 운영위원을 맡을 정도로 여성주의에 그치지 않는 넓은 활동의 폭을 자랑하고 있으며 반 기독교정서가 강한 논조의 이야기를 함으로 반 기독교의 선전전에 대표 얼굴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2008년 배우 최진실의 사망 후 불거졌던, 친권 자동 부활 문제에 대해 반대를 표한 바 있습니다.


저서로 《어느 안티미스코리아의 반란》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등이 있고, 《펄루, 세상을 바꾸다》 《그래도 내일은 희망》 《웃을 순 없잖아!》 《엄마가 결혼했어요》 등 청소년을 위한 번역서가 여러 권 있습니다.

정치활동으로는 개혁당 서초갑 지구당 위원장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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